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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살기

보스니아 내전의 아픈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사라예보

by month-living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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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스니아에 한달살기를 하러 갈 때 까지만 해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달살기를 마치고 다음에 어디 갈까? 생각하던 중 부다페스트에서 멀지 않고, 쉥겐조약에 들어가 있지 않은 국가들을 찾다 보니 발칸반도의 나라들이 눈에 띄었다.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도 정말 먼 기억 속 어딘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등학교 때 세계역사 시간에 사라예보의 총성 사건을 들어는 봤지만, 정말 아는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도시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한달살기를 위해 도착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 막상 도착한 보스니아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한달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맨 처음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에 도착했을 때에는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총알자국들에 가장 놀랐다.

도시 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총알 자국들
총알 자국을 시멘트로 메운 흔적들
사라예보 대학교의 건물 벽면
내 주먹보다 큰 총알자국들
바닥에 떨어진 포탄 자국을 빨간색으로 메운 '사라예보의 장미'

 
이렇게 많은 총알자국들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봤다. 사라예보 도시 전체에 대부분의 건물들에서 이런 총알 자국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전쟁 이후의 편안한 시기에 안전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아왔고, 전쟁의 아픈 역사와 폐해에 대해서 배웠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주먹보다 큰 총알 자국들이 가득 박혀있는 건물의 외벽을 보며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토록 많은 총알 자국들은 현대 전쟁사 중에서 가장 잔혹한 분쟁 중의 하나로 꼽히는 보스니아 전쟁의 흔적들이다.
 
보스니아는 민족과 종교가 다른 보슈냐크인 (보스니아계 무슬림, 현재 인구의 약 50% 이상), 세르비아인 (세르비아계 동방 정교회, 인구의 약 30%), 크로아티아인 (크로아티아계 가톨릭, 인구의 약 15%) 들이 모여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을 때 다민족 사회로 공존해 왔으나, 19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붕괴와 함께 민족적, 종교적 차이에 따른 민족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보스니아 전쟁으로 이어졌다.
 
보스니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며 발생하였는데, 대규모 민간인 학살과 잔인한 인종 청소가 동반된 잔혹한 전쟁이었다. 특히 1995년에 발생한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8,000명 이상의 보슈나크 남성과 소년들이 학살된 사건으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집단 학살로 기록되어 있으며, 1992년부터 1996년 약 1,425일 동안 이어진 사라예보 포위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길게 지속된 도시 포위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라예보 포위전 동안 세르비아계 군대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 지대에서 무차별적인 포격과 저격을 지속했으며, 병원, 학교, 시장과 같은 민간시설도 가리지 않고 공격하여 사라예보 시민들은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존해야 했다고 한다. 이 포위전 동안 약 1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고 하니, 그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거진 30년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 멀지 않은 과거에 이토록 잔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꼬마였을 나이니, 지금쯤 내 또래였을 아이들이 많이 희생당했을 것이고, 지금도 매일을 살아가고 있을 생존자들은 30년 전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을 터이다.
 
내가 한달살기를 했던 사라예보의 아파트의 건물 외벽에도 총알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이 건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 긴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토록 잔혹한 전쟁과 집단 학살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도시 구석구석 세워져 있는 공동묘지가 보스니아 전쟁의 잔혹함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공동묘지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사라예보 포위전 희생의 규모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공동묘지의 묘비석들을 보면 대부분 1992년에서 1995년이 사망년도로 기록되어 있다.

사라예보의 공동묘지

 
보스니아 전쟁 이후 보스니아는 보슈냐크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간의 연합 정부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 세 민족은 공동 주권을 갖고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3인 공동 대통령제! 보스니아는 각 민족 집단에서 한 명씩 대표를 선출하여, 이들이 공동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보슈냐크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3인의 대통령이 8개월마다 순환하며 의장직을 맡아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토록 다양한 민족적 종교적 배경 때문에 아픈 역사를 간직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기에, 한달살기를 위해 방문한 나에게는 다양한 문화가 한곳에 모여있는 놀라운 곳 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한곳에 다 녹아있는 도시! 사라예보의 올드타운 한복판에는 사라예보 문화의 만남을 나타내는 선이 바닥에 그려져 있는데, 이 선을 중심으로 유럽풍의 건물들이 튀르키예 풍의 건물들로 바뀐다.

사라예보 문화가 만나는 공간

 
에스프레소 커피와 튀르키예 커피를 모두 맛볼 수 있고, 케이크와 바클라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이곳!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유럽식 커피
지금은 보스니아 커피로 발전한 튀르키예 커피
내사랑 바클라바...

 
아름다운 교회와 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길 하나 건너서 구경할 수 있는 이곳!

사라예보의 교회
사라예보의 모스크

 
다양한 민족 구성 때문에 보스니아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다양한 민족 구성이 역사와 문화가 풍요로운 지금의 사라예보를 만들어 주었다. 
 
다양한 문화는 먹거리 또한 유럽과 튀르키예 여러 곳의 음식들을 모아 놓은 다양하고 풍요로운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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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 외벽의 총알자국들은 보스니아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보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적혀 있는 Never Forget 사인들이 전쟁을 기억하고자 하는 보스니아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친절한 보스니아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기대도 없이 온 보스니아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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